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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리뷰

옵션 에피소드-(2). 파생상품의 시대, ELW 광풍

by Billie ZZin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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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글에서 예고했던대로(라고 써놓고 거의 1년 걸린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파생상품 일일 거래대금이 미국과 세계 1위를 놓고 다퉜던 기간을 다뤄보려고 한다. 

https://2ndflight.tistory.com/46

 

옵션 에피소드-(1). 911 테러와 증권시장

어느 분야마다 '궁금하지만 무서워서 손을 대지는 못하는 것'이 하나 둘 쯤 있는 법이다. 사업의 피할 수 없는 특성 중 하나는 위험이므로, 그런 치명적인 독이 없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고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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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LW(Equity Linked Warrant, 주식연결 워런트)는 무엇인가?

ELW를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옵션 거래에 대한 전문적인(=주로 매도 포지션 관리에 관한)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코스피나 코스닥 등의 주가지수/개별종목에 콜 옵션이나 풋 옵션에 한해 매수거래만 할 수 있도록 상장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1. 곁다리: 우리나라 파생상품 시장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파생상품 시장(exchange) 장내 거래는 1996년에 코스피 200 주가지수 선물이 상장되면서 시작되었다. 시작 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IMF 냄새가 스멀스멀 나던 시절의, 증권시장이 붐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이후에 지수옵션도 상장이 되었다는 것 같지만, 당연하게도 IMF로 다 박살이 난 후에 파리만 날리다가 21세기 들어서 다시 장이 활발해졌다.

결정적인 사건은 서브프라임 이후에 벌어졌다. 한국은 드물게 서브프라임의 타격(일시적인 환율 급등이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상황이 일찍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증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복구된 국가였다. 그 과정에서 파생상품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많았는지, 2008년 부터 2011년까지 한국의 파생상품 거래는 전설적인 수준까지 과열되었다.

 

2. 거래제한이 없었을 때

2010년 월 평균 거래대금은 43조에 달했다. 일 평균 거래대금이 2조를 넘는 수준이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잘 안 온다면, 거래대금 기준으로는 미국보다 파생상품 시장이 더 커져 있었다고 하면 감이 좀 올 것이다. 파생시장은 태생부터가 손바뀜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시장이지만, 우리나라는 훨씬 심했다. 당시 가장 많이 거래된 상품은 코스피 200 콜/풋이었고, 동시에 코스피 200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파생거래용 기초자산(underlying asset)이 되었다.

세월을 좀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여기서 등장하는데, ELW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던 시점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가의 증권사용 단말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증권사를 방문하거나 전화해서 거래 주문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2020~2021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증권이 한창 인기가 좋을 때는 전화연결이 잘 안 되기 때문에 ELW를 주문하는 최선의 방법은 증권사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 직장인들보다 택배기사, 음식배달부, 택시기사 등이 이 사건의 주인공들로 흔히 언급된다. 증권사 창구 직원들의 당시 기억을 들어보면, 이처럼 의외로 엄청나게 많은 손님이 화이트 칼라 사무원들이 아니라 '차를 운전하는 것이 직업이라 쉬는 시간 잠시 짬내서 증권사 들르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월급 받는 날이 다가오면 창구가 미어터졌다고...

동경 증시 객장(lounge). 이젠 전산화돼서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장면들이다.. 이미지 출처: flickr 

아는 개인사업자인 분은, 그때 주변에서 돈 벌었다는 사람 말 듣고 1억으로 시작해서 몇번 따고 잃고 하다가 연말에 정신 차리고 보니 잔고가 8원이 돼있더라(옵션은 만기일에 행사가능 가격에 도달하지 못하면 가격이 0이 된다)는 생생한 일화를 말해주신 적도 있다.

동시에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매달 파생상품 만기일인 두 번째 목요일이 있는 주가 되면 콜과 풋을 놓고 불티나는(...) 키보드 배틀이 벌어졌다고 한다. 매월 만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거대해진 파생상품 거래량으로 인해 Wag-the-dog(파생상품 시세가 현물 시장에 영향을 주는 현상) 현상이 심하게 발생하고 그로 인해 순진한(글쎄...?) 투자자들이 입는 피해가 커지고 있는 것을 느낀 금융당국은 결국 칼을 빼들었다.

 

3. 규제가 생기고 난 후.. 

규제의 주 내용은 (1) 예탁금 (2) 파생상품 거래 교육을 받을 것 (3) 거래 시세 변동 제한이었다. 처음에 요구된 예탁금은 1500만원, 파생상품 거래 교육은 대략 20~30시간 정도의 수업을 듣고 평가를 이수할 것, 그리고 모의거래를 24시간(이것도 들은지가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난다..) 진행할 것이었다. 거래시세 변동 제한은 옵션 시장에서 하루 100%는 꽤 자주 있는 이벤트인데 썩 이해가 잘 되진 않는다. 가능은 한건가..? 어쨌든... 

당시 ELW에 투자했던 사람들 중 활발하게 거래를 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월급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아무래도 매일 창구에 몇 번씩 가려면...)이었기 때문에 예탁금 1500만원은 상당히 빡빡한 제한이었다. 그리고 파생상품 거래 교육도 전문 헤저(hedger)들이나 달달 외우고 있을 법한 온갖 옵션 합성 전략이나 그리스문자들을 다루는 등, 금융공학을 전공한게 아닌 다음에야 상당히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수하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https://2ndflight.tistory.com/59

 

옵션의 그리스 문자들(Greeks)

파생상품 시장에는 Wag-the-dog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다. 이 현상은 현물시장에 비해 규모가 거래되는 작고, 원리적으로는 현물시장의 가격 움직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파생상품 시장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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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ELW의 시대는 약간 허망하게도 규제 도입에 거의 저항(?)도 못 해보고 스무스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있으니 예탁금 3000만원에, 2020년 들어서 엄청나게 간소화된 거래 교육을 받고 예탁금보다 더 빵빵한 자금이 있어야 거래할 수 있지만 조건만 충족하면 거래할 수 있다. 

최초로 도입된 규제(`11년) 이후 3년이 지난 후(`14년)에 요구 예탁금은 15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상승했고, 옵션의 승수도 크게 상향(쉽게 말해 ELW 한 장의 가격이 매우 높아졌다)돼서 ELW는 개인이 거래하기가 점점 힘든 상품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코비드가 처음 터진 날 풋대박을 맞은 사람은 분명히 있겠지만- 결국 파생상품 시장은 아주 빠르게 냉각되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나라의 증시 규모와 얼추 보조를 맞추는 정도의 규모가 된 것 같다.

정상이 무엇인지, 그 규제가 정당했던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에 와서야 많은 신문사들이 '설익은 규제'라느니, '세계 1위 파생 시장을 망쳤다'느니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 기사를 쓰던 사람이 당시를 살았더라면 경악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같은 기자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규제 신설되어야'같은 완곡화법을 쓰면서라도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고까지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파생시장이 엄청나게 뜨거웠던건 사실이어서, 내가 상식을 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ELW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돈을 따든 잃든 규제를 반대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굳이 카지노에 가겠다는 사람들을 멱살까지 잡아가며 말릴 수는 없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거래행태가 좀 상식 밖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만한 구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래가 막히고 나서 파생상품 거래의 맛을 잊지 못했거나,  맛을 보고싶은 신규유입자들은 거래 제한이 작은 해외선물옵션으로 옮아가게 된다. '해선 안될 해선(해외선물)'이라는 말이 최근들어 유행하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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