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1/04/07/VYDVLV2UIZGHTC23YEGUOVIPKU/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정도로밖엔 수식할 말이 없다.
1. 정치의 필연적 속성
모든 인간은 탐욕스럽다. 그 중에서도 정치인들은 특히 더 탐욕스럽다. 대중은 탐욕스럽지 않은 정치인을 상상하며 단 꿈(미몽?)을 꾸지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탐욕스럽지 않다면 왜 모든 탐욕 중에서도 하필 정치권력을 추구하겠는가? 어지간히 탐욕스러워서는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만한 정치권력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인은 물질적으로도 탐욕적이다. 대부분의 인간들만큼, 혹은 대부분의 인간들보다 더.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든 자기 재산을 전부, 혹은 소위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전부 기부한 사람은 없다. 모든 정치인은 적어도 일반인들만큼은 탐욕스럽다.
정치인이 탐욕을 채우는 수단은 본질적으로 세금이다. 정치인들의 월급을 올려주는 것도, 지지율을 높여주는 복지사업도 세금으로 이루어진다.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정책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이들 중 세금 파이를 줄이려는 목표를 가진 정책은 백 개 중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거의 항상 세금을 더 걷고싶어한다. 공공사업은 곧 권력이다. 이는 좌우 할 것 없이 그렇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이 뭔가를 해준다는 공약을 표면 그대로 믿으면 세율인상으로 뒤통수를 맞게 돼있다. 나는 기재부 장관이 공공 사업을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뭔가를 하는 것은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는 경우는 잘 없지만- 대단히 쉬운 일이다. 오히려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권력자 본인의 편의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정부가 뭔가를 뭔가를 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시가 아닌 한 좋은 정부는 뭘 할 지를 많이 연구하기보다는 뭘 안해야 할 지를 잘 아는 쪽일 수 밖에 없다.
2. 조폭국가론에서 야경국가론까지
예전에 썼던 글들 중 하나에서 맨슈어 올슨 교수의 조폭국가론이란걸 다룬 적이 있었다. 유권자들은 스스로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주둔형 도적떼를 용병으로 고용하여 유랑형 도적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유랑형 도적떼는 일거에 유권자들의 재산을 다 털어가지만, 주둔형 도적떼는 주민들이 잘 살아야 뺏아갈 것(세금)이 늘기 때문에 보다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덜 뺏을 주둔형 도적떼들을 용병으로 고용한다. 주둔형 도적떼들끼리도 용병이 되기 위해 약탈 덜하기 경쟁(?)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정치의 속성을 아주 잘 설명하는 우화라고 할 수 있다.
https://2ndflight.tistory.com/25
애덤 스미스의 야경국가론이 위대한 아이디어였던 것은 우화적인 현실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국가의 역할을 정의했다. (1) 외부/내부의 적들의 폭력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막는 것 (2) 동일한 주체들에 의해 국민의 재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는 물질적 측면에서 개인이 세금을 내서라도 지켜야 하는 자유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신체와 관련된(생명, 이동, ...) 자유와 소유(재산)의 자유다. 세금은 자유를 지켜주기를 바라며 국가에 지불하는 비용이지만, 본질적으로 소유에 대한 침범이기 때문에 이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개인에게도, 국가의 영속에도 유리하다. 여러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엄청나게 걷어댔던 국가들이 갔던 길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관료조직의 부패가 가속화되고 부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떠나는 것이다.
3. 법인세 동맹 발상의 근원
각 국가들은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세정책을 만들고 수정한다. 정치인들이 세금을 더 걷는 방식은 크게 (자명하게도)두 가지다: (1) 세금이 나오는 우물을 키우거나, (2) 세율을 올리거나. 그 중에서도 더 선호하는 방식은 (2) 세율인상하기다. 부를 증대시키는건 아무리 잘 해도 연에 4~5%(아주 이례적으로는 10%...?)성장이 기껏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세율을 인상시키는 쪽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단기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율 인상을 하자니, 눈치가 보인다. 세율을 견디기 힘든 정도로 높이면 기업들이 커맨드센터를 들어서 옮겨버린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덤비면 거위는 옆집으로 도망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도망갈 만한 집들끼리 동맹을 맺는 것이다. 이러면 거위는 어디로 가든지 배가 갈라진다. 재빨리 가르지 않으면 옆집에서 가지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도살자들 간의 동맹이다.
법인세 동맹으로 국가간 조세 인하 경쟁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려 하는 국가들의 특징은 한결같다: 재정을 방만하게 쓰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현행 정부의 지출 규모, 다시말해 정치인의 권력과 직결되는 자금의 우물이 해외로 이탈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세율을 낮추지 못하도록, 일종의 가격 담합을 시도할 분명한 인센티브가 있다.
4. 단기적인 효과와 장기적인 효과
단기적으로는 돈을 퍼부으면 모든 것이 다 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원래 모든 종류의 정치 프로그램은 시작이 화려한 법이다. 처음부터 돈이 모자란 사업은 없고, 이는 걸려있는 이권이 크면 클수록, 목표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그렇다. 관료조직의 필연적 성격이다. 내가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정부는 조직원리때문에 잘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며(현대인이라면 정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정치를 통해서 해야하는 일은 법인세 하한제와 같은 경쟁차단형 입법을 온 힘을 다해서 틀어막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처음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더 위험하다.
장기적인 효과는 자명하다. 상대적으로 사업 환경에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이를테면 개도국 시절의 우리나라)이 투자유치를 위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법인세를 인하하는 것이다. 처음 직업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임금협상에서 낮은 임금 조건으로 협상을 시도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기도 하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가격을 낮춰야한다.
이 방법이 가져올 장기적 결과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 있는 국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그리고 어쩌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정책적 경쟁무기를 빼앗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조세 카르텔에 가입한 국가들 중, 평탄화 된 비즈니스 환경이 불리한 환경을 가진 국가부터 순서대로 생산력이 저하되고 비용이 상승할 것은 자명하다. 종국에는 조세카르텔에 가입한 국가들 중 경쟁력이 낮은 국가들부터 경제가 크게 악화될 것이고, 관세동맹을 탈퇴하거나, 아니면 관세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보다 가난해지는 것을 감수하거나 하는 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규제들 대부분은 있으나 마나 한 선에서 시작해서 점점 숨통을 조이게 되는데, 동맹 세율이 극단으로 밀려가고 부작용이 폭발하는 데는 20 ~ 30여 년 정도가 걸린다.
이런 문제들은 전형적으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정하기가 힘들고, 결국에 가서는 명확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반대 조치를 취하는 데 대단한 정치적 압력을 견뎌야하는 종류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5. (사실) 더 큰 위험 - 조세 전체주의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sions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 작자 미상 -
언제나 세금을 (더) 걷는 명분은 거창하지만, 결과물은 대부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는 남의 돈을 남을 위해서 쓰겠노라는 아름다운(?) 명분 하에 이뤄지는 지출의 필연적인 속성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가족정도는 예외일까?)도 나의 이익에 나만큼 관심있고 신경스고 사려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전체주의의 핵심 아이디어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더 큰 대의가 있다면 그것을 강제로 희생시켜도 괜찮다.'는 것이다. 사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공리주의의 핵심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이와 비슷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단어를 조금만 더 확대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근대인이라면 공리주의적 주장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공리주의가 전체주의를 내포한다고까지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논리를 확대하는 것 같다. 공리주의가 전체주의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는 원칙이 추가되어야 한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도 명백하다. 모든 희생은 "자발적으로" 이뤄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이를 강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전체의 이익', '집단의 이익', 내지는 '사회의 이익'이라는 주어가 불분명한 이익에 경도돼서 단순히 머리숫자, 혹은 크기로 대소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희생시킬 수 없는 (개인의)이익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데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
문제는 세금인하가 국가가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 중에서도 비도덕적인 방법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세금인하는 개인의 부를 증대시키고, 국가간 감세경쟁을 촉발시키므로 국가가 해야하는 '어렵지만 중요한 일'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인세 동맹은 조세인하 정책을 가지고 국가간 기업유치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의 실행을 전면 차단하게 된다.
이는 글로벌 복지 또는 부패한 부자들을 세금으로 처벌한다(언제나처럼 세금은 성과에 대한 처벌이다)는 미명 하에 해당 국가의 편익 추구를 전면 차단하는(감세는 정부의 개인으로부터의 약탈량을 줄인다는 점에서 거의 항상 옳은 정책이다), 전형적인 '아름다운 명분으로 행해지는 남의 이익 희생'이다. 이런 종류의 법은 선택의 자유를 엄청나게 제약하여 약탈을 용이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입법은 효과가 세제에 한정되긴 하겠지만, 명백하게 전체주의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결국에 이르러서는 다른 모든 영역에 전체주의친화적인(totalitarian-friendly?) 영향을 준다. 언제나처럼 '최소수 손해자의 최소손해' 정도로 합리화 되겠지만, 정치적 완곡어의 특성 상 최소손해의 하한선은 점점 내려가게 돼있다. 이런 종류의 거래에는 일시적으로 세금을 더 걷는 정부가 승자가 되지만, 장기적으론 모두의 편익이 감소한다. 오래 안 살면 그 꼴을 안 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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