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와 FED의 기조" 포스팅에서는 미국의 FED(연준) 내에서의 비둘기파(온건파)와 매파(강경파)의 의미와, 현 연준의장인 제롬파월의 성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적어도 지난 20년은 비둘기파의 시대였고, 그에 따라 지속적으로 금리가 하강했음도 언급했다. 일반 대중이 비둘기파 성향의 FED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함께.
2020/05/10 - [투자리뷰] - COVID-19와 FED(연준)의 기조에 대하여
오늘은 좀 분위기를 바꿔서 매파의 영웅, 폴 볼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볼커는 본인의 매파적 성향과는 다소 안 어울리게도 민주당 대통령인 지미 카터의 재임 기간(1977~1981) 중에 FED 의장직을 받게 된다. 카터의 재임 기간을 보면 그가 재선에 실패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다음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리하여 볼커는 자신의 FED 의장 임기(1979~1987)의 대부분을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레이건과 함께 일하게 되는데, 그의 매파 정책이 미국의 경제를 구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그가 전설의 매로 활약했다는 것은 그 시절의 인플레이션이 그만큼 심각했던 배경이 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경제 이벤트는 오일쇼크다. 볼커는 오일쇼크로 인해 널뛰는 듯한 물가로 경제가 엉망이었던 시대를 살았고, 그 시기에 필요한 화폐정책을 잘 선택하여 영웅이 되었다.
대체로 기준금리는 인플레이션에 선행하거나 그것을 추종하도록 설정한다. 오일쇼크로 인해 원자재가격이 폭등하면 그와 상관관계에 있는(Market Player들의 심리에 따라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다른 물가들도 폭등한다. 그러자 근로자들에게 줄 돈이 부족했던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다만, 중동에서 건설업을 했던 회사들은 예외적이었는데, 대부분이 일본의 기업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대건설도 오일머니의 헤택을 톡톡히 본 회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산유국들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1990년 이후 산유국 동맹은 내리막길을 걷고, 2020년의 유가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1/4 이하 가격이다..) 생산량 감축 담합을 통해 유가를 올릴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으니.. 1979년에는 산유국들 간의 복잡한 정세가 기회를 만들고야 말았고, 그 결과로 2차 오일쇼크가 터지게 된다. 대대적인 유류 감산 파동으로 인해 석유와 기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함과 동시에 증시는 폭락했다, 놀랍게도 실업률이 임금과 동시에 폭등했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70년대를 고달픈 시기로 기억하는 이유는 이때문이다(한국은 이 시기에 인플레율이 30%를 마크할 뻔 했던 해도 있다).
물가상승은 경기의 확장과 양의 상관관계에 있지만, 돈의 가격(=금리)를 물가에 잘 연동시키지 못하면 화폐가치 급락으로 인한 인플레와 동시에 경기가 위축된다. 이른바 스테그플레이션에 진입하는 것인데, 이때는 물가상승을 부스팅할 게 뻔한 비둘기파 정책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래서 이 때는 물가라도 안정 시키려면 매파 정책이 필수인 것이다. 볼커는 달러 가치의 추락을 막아 물가를 안정화시킬 목적으로 유가상승으로 인한 미친 인플레이션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그의 금리 상승은 대출이라는 개념이 보편화 돼있지 않은 정말 까마득한 시절의 금리정책만큼이나 과격했는데, 그의 임기 중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무려 21%를 마크하게 된다.
물가가 하락하는 댓가로 미국의 경기는 완전히 냉각되었다. 그래서 흔한 해설 중 하나로 79년의 인플레이션을 잡은 대가로 카터의 재선을 날려먹었다는 평가가 있다ㅎㅎ. 2차오일쇼크 기간 동안 볼커는 그의 정책으로 인해 파산한 채무자들로부터 협박을 많이 받았고, 호신용으로 권총을 소지해야했다. 그럼에도 그는 임기 내내 6% 이상의 금리를 유지했고, 카터 다음으로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그 기간동안 볼커를 신임하여 그가 정책을 펴도록 내버려 둔다. 그 덕에 미국 자산, 특히 부동산 시장의 버블은 싹 가라앉게 된다. 볼커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달러를 구제한 것이다. 반면, 이 시기에 일본의 전설적인 호경기(버블)는 절정을 찍게 되는데... 이 버블도 볼커는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이라는걸 도입해서 제압해버린다. 그야말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경제관료의 모범인 셈이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임기 내내 욕만 먹다가 퇴임한 볼커의 의장직 후임은 그 유명한 앨런 그린스펀이다. 그린스펀은 볼커 이후 약 40년 간의 미국의 금융위기 돌파책으로써의 금리 인하를 관례화 시켰는데, 위의 차트에도 나타나 있듯 볼커 이후 짧게보면 20년(1987~2006)간, 길게 보면 지금까지 30년 이상 이어진 지속적인 비둘기 기조를 이끈 인물이 그린스펀이다. 그는 FED 의장을 20년이나 수행했다..;; 전임자인 볼커가 전설의 매로 유명세를 타면서 고금리를 관례화 해둔 덕에 그는 20여년간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서 비교적 부드럽게 위기를 돌파(Soft Landing)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볼커가 먹던 욕들도 칭찬으로 바뀌게 되었다 카더라. 이 양반은 비둘기였기 때문에 인기까지 좋았다...가 임기 끝난 직후에 리먼쇼크가 터지는 바람에 말년에 평판이 많이 꼬였다.
볼커는 작년, 현지시각으로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볼커는 미국을 인플레이션의 숙취에서 깨어나도록 만들었고, 전세계로 퍼질뻔 한 버블을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하여 레이건 시대의 또 한명의 영웅이자, 하이에크의 지적 동료였던(그리고 아마도 볼커의 지지자였을) 밀턴 프리드먼의 명언을 잘 기억하면 경제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화폐정책의 효과는 알콜중독과 같습니다. 화폐를 많이 발행하면, 좋은 효과가 먼저오고 나쁜 효과가 나중에 옵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다음은 두통과 숙취가 오듯이. 그래서 두 가지 모두 과도하게 하려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화폐를 줄이는 것과 술에서 깨는 것은 그 반대입니다. 나쁜 효과가 먼저오고, 좋은 효과가 나중에 옵니다. 두통이 먼저 오고, 술에서 깨는건 나중이듯이. 이게 긴축정책을 오래 유지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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