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ll never be the most popular guy at the party if you say the emperor has no clothes.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한다면 절대로 파티에서 가장 있기있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0. 공매도(Short Selling)?
증권시장의 투자자는 상승장 투자자와 하락장 투자자 두 부류로 나뉜다. 상승장 투자자는 시장 또는 개별 종목의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주식을 사서 비싸게 팔려는 사람들이고, 적게는 90%에서 많게는 95% 정도를 차지한다. 반대로 하락장 투자자는 시장이나 개별 종목의 가격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고 주식을 (빌려서)미리 팔고,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사서 갚으려는 사람들이다. 하락장 투자자들의 투자방식을 공매도라고 한다.
상승장 투자자든, 하락장 투자자든 1000원짜리 주식을 1500원에 팔려고 한다. 다만 순서가 다를 뿐이다. 이 행동 순서의 차이는 성격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상승장 투자자는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낙관론자들이고, 반대로 하락장 투자자는 가격이 내리기를 기대하는 비관론자들이다.
1. 최초의 공매도
공매도는 까다로운 개념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에도 상인들 사이에 원리적으로 공매도와 유사한 행동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증시로 탐색 범위를 축소하더라도, 공매도는 증시의 등장과 함께 바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전세계 교역의 중심지였다. 최초의 증시는 암스테르담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1609년, 그 유명한 동인도 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를 대주주(지분율 25%)였던 Isaac Le Maire가 (더 싸게 buyback 할 목적으로)공매도 하면서 공매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대부분의 '최초시도'는 성공적인 것들만 기록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이작의 시도는 성공했고, 동인도 회사의 주가는 크게 낙하하여 이 사건으로 아이작은 '순진한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 + 과부제조기' 등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투자실패 = 한강드립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듯 하다.
2. 금지의 역사
1609년 최초의 공매도가 성공한 후 1610년이 되자 동인도 회사의 이사들은 공매도 금지를 천명한다. 그 후부터 유럽 전역에서 사실상 17~18세기 대부분의 기간동안 공매도는 제도적으로는 금지되었다. 하지만 공매도투자자들은 끊임없이 우회로를 찾아내서 하락장을 발라먹었고(물론 예상과 달리 주가가 계속 상승해서 돈을 다 날린 사람이 더 많았겠지만), 증시의 이면에서 활약하는 암흑가같은 이미지가 굳어지게 된다.
18세기에 공매도가 결정적으로 비난을 받은 사건은 그 유명한 남해 주식회사(South Sea) 버블이 터진 직후였다. 당시의 주식회사라고 하면 모험적인 것들과 관련이 있었다.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 확장에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고, 신대류을 발견하면 그 지분에 대한 배당금을 약속으로 하여 주식을 발행하고 항해자금을 모았다. 당시 남해 주식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남해 주식회사도 당시 신대륙이었던 남미와의 무역을 전담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영국의 (국영)회사였다.
사실 뒷사정은 당시 영국 정부의 채무 과도화, 남해 주식회사의 재정 위기 등 훨씬 복잡했지만, 회사가 공개회사(요즘 식으로는 IPO)가 된 이후 투기심리를 자극한 주요 줄거리는 '남미 무역 독점'이었다(남미는 농사/목축업 조건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지역).
당시 이 버블에 참여했던 유명인은 아이작 뉴턴, 대니얼 디포(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헨델(음악가), (윈스턴 처칠의)처칠 가 등이 있었다. 알려진대로 뉴턴은 손실을 본 그룹에 포함되었고(교수 연봉 30년치를 날려먹었다나...), 디포가 뉴턴과 같은 그룹에 속해서 전재산을 날리고 가난 속에서 죽었다. 반대로 헨델이나 처칠 가는 버블에서 잘 빠져나와 상당한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
주가는 중간에 단행된 여러 차례의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계속 올랐고, 그때문에 피해가 엄청나게 확대된 후에 1720년에 버블이 완전히 꺼지게 된다. 당연히 사회적 파장은 막대했고, 공매도꾼들은 이 유탄을 맞아(사실 10배 넘게 오르는 동안 공매도꾼들 여럿 파산...) 결국 1734년엔 런던 증시에서도 공매도가 금지되기에 이른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이던 1812년에는 뉴욕 증시에서도 공매도가 금지되었다.
19~20세기 기간동안 공매도 금지는 주로 전쟁이 있는 기간동안 이루어졌다. 1, 2차대전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중반부터는 공매도가 장기간 금지된 적은 없는 것 같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공매도를 주력으로 하는 헤지펀드도 등장한다. 특히 1987년 검은 월요일 사건 이후로는 공매도가 대중적으로도 인기있는(?) 투자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3. 공매도 절차
가격의 하락에 베팅하는 방법은 순수한 의미의 공매도 외에도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방법들도 있으며, 사실 이 방법이 더 간단하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의 현물 공매도만을 생각한다면 절차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차입할(=빌릴) 주식을 정해서 빌리고, (2)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3) 대차 거래 계약에 따라 주식 차입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4) 주식을 되사서 주식을 빌려준 사람에게 갚으면(=short covering, 숏 커버링) 거래가 끝난다.
매수거래에 비해서 복잡해보이는 이유는 주식을 '빌려줄'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빌려주는 일은 중개업(brokerage)의 일부인데, 예탁자산이 많은 증권사들(xx증권 등..)이 수수료 외 별도 수입으로 증권 대차수입을 노리고 이 사업을 운영하고, 수익성이 꽤 좋은 사업이다. 미국 증권가의 악의 축 정도로 취급되는 IB(Investment Bank)들의 특화사업이기도 한데, 인터넷 등장으로 기업금융 은행(Corporate Bankg)나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난 후에도 IB가 아직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공매도로 수익을 낼 수 있으려면 두 가지가 만족되어야 한다: (1) 당연히 가격이 내려야 하고, (2) 적절한 비용(=이자)로 주식을 빌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연 기준 3~4% 정도 이자가 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개사들이 대차해줄 주식을 구하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최근에 발생한 아주 유명한 케이스는 2020년의 테슬라였다. 테슬라는 매일매일이 급등의 연속이어서 공매도한 기관들이 숏커버링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매수 대기열이 미어터지는 중이었다. 주주들도 대부분 종목을 홀드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대차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테슬라를 거래하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테슬라를 사려고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은 주식을 빌리기가 너무 힘들어 공매도를 목적으로 주식을 빌리려면, 변동금리긴 했지만, 일시적으로는 연 500%(...)이자를 지급해야 했다.이렇게 주식을 '실제로' 빌려야하는 공매도를 차입 공매도라고 한다. 반대로 실물이 없더라도 계약 상으로만 이자를 지급하고 주식을 나중에 갚아도 되는 무차입 공매도도 있다. 무차입 공매도는 소형회사들의 주식을 떨어질 때까지 판다든가 하는 투기적인 행동을 무제한 확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특히 07년 위기 이후부터는) 거의 금지되는 추세다. 참고로 게임스탑 사태같은 경우는 대차주를 매도하고 그걸 산 사람에게 또 빌리고... 이걸 반복하다보니 공매도 비율이 140%가 된 적이 있었다.
4. 공매도를 완전히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좋지 않다. 공매도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고 하기에는 상승장 투자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주가를 밀어버릴 수 있지만... 중기적으로는(1~3년 정도 기간) 충분한 재료가 있는 경우에는 숏스퀴즈(매수세가 몰려서 강제로 숏커버를 해야하는 상황)때문에 대개는 공매도꾼들이 강제청산 당하는 예가 훨씬 많다. 오히려 중기적으로 몇달 내내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횡보장에서 상승기대감을 잃은 매수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고 봐야한다.
실제로 는 폭락장에서 공매도가 주가를 받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제법 비싼 이자를 계속 내고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주가가 내려가면 반드시 커버링을 할 수밖에 없다.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시간은 적인 셈이다. 투매가 발생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지만, 또 반대로 투매가 발생했을 때 수익 실현을 목적으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사람들이 공매도 투자자들이다.
공매도 투자자가 사라진 시점에 투매가 발생하면, 아주 높은 수준에서 형성돼잇던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매수대기자를 만나려면 호가를 한참 더 내려야 한다. 그때문에 적당한 이익을 내고 커버링을 하려는 공매도 투자자가 사라진 시장에서는 주가가 예전보다 더 심하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공매도 투자자들은 기술적으로는(technically) 그들의 이익실현이 주가가 너무 빠르게 떨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물론 대단한 도덕심보다는 이익동기가 더 많다). 많아야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공매도꾼들이 시장의 변동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것이다.
정성적으로는, 공매도 투자자가 아니라면 회계부정, 부정공시, 채무부실과 같은 문제들이 발견되는 시점이 늦어지고, 그로 인한 증권사기 피해액이 더 커진다. 공매도를 목적으로 한 정보탐색전이 부정적인 일에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이론상으로만 그런거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득은 내 능력 밖이다). 공매도 투자자가 아니라면 경영진의 부정행위를 누가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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