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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거의 반년이 넘게 걸린 독후감이 되어버렸다(다시 읽고 정리하기가 귀찮아서...)
지난 번 글에서는 20세기에 미국의 금융가를 지배했던 규제조항인 글래스-스티걸 법의 핵심 조항이 폐지된 과정을 다루었다. 그로 인해 상업은행들은 투자은행업을 겸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은행업이 완전히 자율화 된건 아니었으며 또 그럴 수도 없이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9. 은행 - 산업 분리
하원에서 이 작업의 대표자를 맡은 사람들은 텍사스 필 그램(Phil Gramm), 아이오와의 짐 리치(Jim Leach), 그리고 버지니아의 토머스 J.블라일리(Thomas J. Bliley)로,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면서 도입된 금융 서비스 현대화 법(Financial Services Modernization Act)은 이들의 이름을 따서 Gramm-Leach-Bliley Act(GLBA)라고 불리게 된다.
법의 핵심 내용은 글래스-스티걸 법에 다라 합병이 불가능한 금융업의 몇 개 분야를 합병해서 금융지주사로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상업은행을 하던 은행들 중 일부는 투자은행에 더해 보험업까지, 또는 둘 모두를 겸업하게 되었으며 투자은행 중 일부도 상업은행업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람-리치-블라일리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가장 환호했던 금융사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어김없이?) 씨티였다(그리고 서브프라임 때 가장 얻어터진 곳도). 씨티는 1998년에 글래스-스티걸이 폐지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기자 잽싸게 합병을 추진하여 트레이딩 시장에 예금을 담보로 한 막대한 양의 자금을 쏟아부어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이렇게 씨티는 법이 통과되고 나서 사후(!)에 승인을 받음으로써 대형은행 중에는 최초로 GLBA의 적용을 받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에는 전세계 상장사 시총 1위까지 하는 그야말로 수혜 회사가 되었다. 초기에 합병한 세 개 회사는 다음 세 개 였다.
씨티(은행) + 살로먼브라더스(증권중개업=브로커) + 트레블러스(보험사)
한편 볼커는 GLBA가 통과되는 과정에서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천생 관료였던 그는 금융사의 대형화를 매우 경계했다. 대형 상업 은행들은 기존에 받아뒀던 고객의 예금을 증권업의 펀딩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회사들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이 비약적으로 늘었던 덕에 금융 외의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다른 산업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씨티그룹은 아직도 자전거 대여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금융업의 팽창을 반대하는 입장인 사람이라면 은산분리는 당연히 그보다 훨씬 더 강하게 지지할 수 밖에 없다. 볼커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조언을 줬고, GLBA가 통과되는 과정에서도 은산분리는 유지되었다(사실 중앙 은행을 폐지시키거나 중앙은행이 제 1 금융권이랑만 거래하고 이런거 없으면 은산분리 없어도 될 것 같기도...).
은산분리가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영역이 있었다. 바로 상품선물(commodities futures) 시장이다. 상품선물은 제조업 입장에서는 원자재 시장이지만 금융업의 입장에서는 투기성이 강한 증권이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거래되는 선물인 원유 선물은 정유사 입장에서는 가격 위험 헤징을 위한 중요한 보험이고 당일날 인도(dellivery)받는 실물이지만,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거래 가능한 금융 상품이다.
은행들은 상품 선물 시장에서 비합법인듯 합법인 선물 트레이딩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 같고, 볼커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지만, 트레이더 친구들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레드라인을 시험에 들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9.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금융질서 재편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로 버냉키가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책임추궁 문제가 남아있었고, 전세계의 금융계에는 엄청난 규제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통령이 오바마로 교체되었다.
볼커는 처음에 오바마로부터 재무부 장관(Treasury Secretary) 직을 제의 받았다. 당시 볼커는 80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격무에 시달릴 것을 염려하여 임기를 다 지낼 수 없다는 말로 제의를 거절했다. 오바마도 볼커가 수락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더 이상 권하진 않고 원래 볼커에게 제의하려고 했던 재무부 장관과, 국가 경제위원회(사실 이런게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의장으로 각각 한 명 씩 추천을 요청했다.
볼커는 재무부 장관으로 (우리에겐 약간 생소한) 티모시 가이트너를, 국가 경제 위원회 의장으로는 (이쪽은 좀 유명한) 로렌스 서머스를 추천했으며 둘은 곧바로 기용되었다. 볼커는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서 그들을 추천했노라고 쓰고 있다. 서머스는 집안부터 시작하여 경제학 분야에서 그야말로 초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고, 가이트너는 명문대(다트머스) 출신이긴 하지만 소위 HYPSMC로 불리는 대학군을 나오지도 않았고, 경제학 전공은 더욱 아니었다(동아시아학). 성격에 있어서도 가이트너는 유화적인 성격이었고, 서머스는 그의 좋은 머리만큼이나 거침없는 성깔로도 유명했다. 뭐 여튼...
티모시 가이트너는 그의 자서전(?)인 <스트레스 테스트>도 번역돼있는데(분량이 600페이지...) 시간이 나면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볼커는 이때 자신의 마지막 의장직으로 오바마의 '대통령 경제회복 자문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그 유명한 볼커 룰은 이때 도입된 것이다. 볼커 룰의 핵심은 상업은행이든 투자은행이든 상관없이 은행업을 하는 회사들의 일방향성(speculative) 가격에 대한 트레이딩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볼커 룰은 프랍 트레이딩을 두 종류로 분류하였다. 하나는 방금 언급한 일방향성(가격 상승 또는 하방으로만 베팅)이고, 다른 하나는 헤지 트레이딩(hedged trading)이다.
헤지 트레이딩은 상방에 베팅하면 그와 동일한 만큼의 자금 노출을 하방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반대의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지 트레이딩을 하는 은행은 주로 파생상품 매도 포지션에서 수익을 올리고, 실물 자산을 매수하거나 매도하여 그 포지션을 헤지한다. 파생상품이 만기가 되어 거래가 청산되고 나면 은행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파생상품에 대한 프리미엄을 최종적으로 취하게 된다. 안전한 방법이지만, 수익률은 낮다. 특히 지금같은 저금리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은행에서 프랍트레이딩을 해왔던 사람들이 유명해지거나 월급을 올렸던 방법(=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고 실적을 보여줄 수 있었던 부문)은 일방향성 트레이딩이었기 때문에, 은행에서 제일 짭짤하게 수익을(그리고 때로는 거대한 손실을) 올리던 분야가 금지된 것이다. 그래서 볼커룰이 통과된 그날 부로 은행에서 프랍 트레이딩 부서도 사실상 사라진 셈이 되었다. 그 결과로 은행에서 가장 높은 봉급을 받던 그룹이었던 프랍트레이더들은 이제 은행이 아닌 헤지펀드나 프랍 트레이딩만을 전문으로 하는 소위 트레이딩 오피스형 회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프랍 트레이딩이 사라짐으로써 금융시장의 효율성이 저하될거라는 볼멘소리가 많았지만, 제로썸적인 요소가 강한 프랍은 고객과의 이해관계 상충 이슈 + 또 너무 높은 보수로 인해서 장기존속이 지난한 구조 때문에, 명분을 놓고 벌이는 설전에 있어서 볼커에게 쉽게 우위를 내주고 말았다. 볼커는 이전 글에서 다뤘던 샤프와의 대화에서처럼, "프랍 트레이딩을 없애면 우리 경제가 성장함에 있어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라는 말로 반대파들을 일축시켰다. 그리하여 도드-프랭크(Dodd-Frank) 법은 하위 조항으로 볼커 룰을 포함하여 통과되었다.
하지만 규제가 시행되기 시작한지 10년이 좀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볼커 룰로 인해서 스프레드 트레이딩이 지나치게 많아졌고, 흔히 헤징 상품(헤징은 주로 현물로 한다)으로 활용되는 국채 수요가 자유시장의 수요에 비해서 과도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채권 시세가 높을 때도 불커 룰로 인해 근본적으로는 하방베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정부는 더 팽창한 것 같고... 사실 실패하기에는 너무 큰(too big to fail) 조직 중 가장 큰 것은 연방정부다. 다시 10년 뒤에는 어떨지...
볼커가 (공무원인) 입장 상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거대해지고) 비효율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은 걱정거리로 삼고 있었던 것 같다. 연방 정부에는 너무 많은 공짜돈("For government, there's too much easy money.")이 굴러다니고 있고, 워싱턴은 지속적으로 공공정책으로 포장된, 실제로는 특수 이권들을 지원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Washington is directed toward shaping public policy and laws to benefit specific interests."). 다만, 볼커 룰이 의도치 않게 연방정부의 적자재정을 팽창시키기 너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 것도 고려되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10. 세 가지 진리(Three Verities), 그리고 미래
볼커는 마지막 장에서 금융에 있어 중요한 중앙은행의 역할들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1) 안정적인 물가(Stable Price)
연준 총재 임기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윌리엄 마틴(William M. Martin)은 (자신도 임기 말에는 별로 잘 지키지 못했지만..) 이런 말을 남겼다. 볼커는 마틴을 존경했다고 하며,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은 책에서도 인용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기 시작할 때 접시를 치우는 것이다.
(The job of the Fed is to take away the punch bowl just as the part gets going.)
볼커는 미국이 대형 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청~장년기를 보냈다. 사실 경제 지표를 관찰하는걸 주특기로 하는 경제학자들이 실수하는 부분으로 물가의 안정성을 기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그 어떤 물가지수도 소비자 물가를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못하기 떄문에(내심 과소반영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다) 물가 관리에는 항상 보수적으로 임해야 한다는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경제지표를 보는 관점과 그 애매모호성에 관해 볼커는 앨런 그린스펀(볼커의 연준 총재 후임으로, 마틴 총재에 뒤이어 19년을 넘기고 두 번째로 긴 임기를 지냈다)과 자넷 옐런 사이의 실랑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물가를 관리할 때 '가계의 구매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물론 나의 입장은 그런 수준같은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물가지수를 신경쓰면서 경제생활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의 인플레이션을 지지했다. 이는 상당히 모호한 말이라서 옐런은 '그래서 그게 몇 %인데요?'라는 질문으로 받아쳤다. 이에 대한 그린스펀의 대답은 '명확한 수치가 있는 건 아니'라는 말로 되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20여 년, 길게는 30여 년간 유지했으나 미국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지는 않았는데, 그 기간동안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가 인플레로 고생을 좀 덜한 이유로는 중국의 공업화로 인한 범지구적인 생산력 확대를 꼽고 있다. 그 덕에 서브프라임 이후의 대규모 완화 정책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지만, 2022년 현재 중국 효과도 한계가 보이는 것 같다.
(2) 건전한 금융(Sound Finance)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나의 사견으로는, 사실 연방준비은행 시스템은 이제 초기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나 거대한 권력들이 집중된 곳이 돼버렸고, 또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의화나 행정부와 너무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독립성이 이미 거의 의미가 없는 조직이 돼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의 금융 인사 풀은 대학교수-시중은행간부-의회-재무부-중앙은행이 사실상 하나의 풀이고, 그에 따라 회전문식 인사인 데에서 문제가 대부분 기인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그럼에도 중앙은행을 폐지시키는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더 문제인 것이고...
(3) 건전한 정부(Good Government)
볼커가 인용한 구절은 레이건의 다음과 같은 경구였다.
정부는 우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문제다.
(Government is not the solution to our problems. Government is the problem.)
볼커는 관료출신인 사람 중(정부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에서는 드물게 이를 인정한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연방정부는 투표를 거듭할수록 미국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정부의 구성원 개개인들이, 원칙에 따름으로써 겪을 풍파를 견뎌내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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