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마다 '궁금하지만 무서워서 손을 대지는 못하는 것'이 하나 둘 쯤 있는 법이다. 사업의 피할 수 없는 특성 중 하나는 위험이므로, 그런 치명적인 독이 없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파생상품이 그런 영역이다. 복잡하지만, 때로 하루만에 500배를 벌었다느니, 원금의 100배를 잃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곳이 파생상품 시장이다.
이런 놀라운 이익/손실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으니 알아두면 증시가 떠들썩 할 때 피식할 수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소개하겠다.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러든 저러든 최종 결론은 파생상품에 자산을 크게 걸고 돈을 벌려고 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 돈을 벌 목적으로는 거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1. 옵션이란 무엇인가?
옵션(나아가 파생상품)은 '특정 미래 시점(만기, expiration)'의 '특정 가격(행사가, strike price)'에 대한 매수 또는 매도 권리를 상품화한 것이다. 옵션의 종류를 매수했을 때 기초상품(주식, 채권, 또는 다른 파생상품(...) 등)의 가격 방향에 따른 이익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가격이 상승하면 이득을 보는 콜 옵션(call option)과, 가격이 하락하면 이득을 보는 풋 옵션(put option)으로 나뉜다. 그리고 콜과 풋은 각각 매수 또는 매도가 모두 가능하다.
콜은 특정 시점에 특정 가격으로 기초상품을 살 수 있는 권리다. 그러니 기초상품의 가격이 많이 오르면 ,그것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콜 매수자는 이익을 낸다. 반대로 풋은 특정 시점에 특정 가격으로 기초상품을 팔 수 있는 권리다. 그러니 기초상품의 가격이 많이 내리면, 그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매수자가 이익을 낸다.
매도했을 때는 매수했을 때와 상황이 반대가 된다. 콜을 매도한 사람은 기초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이익을 보고, 풋을 매도한 사람은 가격이 상승하면 이악을 본다. 단, 매수/매도자 간에는 이익 또는 손실 폭 제한이 크게 다르다(이유는 2.를 보면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수자의 손실은 제한적이고 가능한 이익은 무제한이다. 반대로 매도자의 가능한 손실은 무제한이고 이익은 제한된다.
※ 권리행사가능 시점에 따라 미국형(American style)과 유럽형(Europe style)으로 나뉘기도 한다.
2. 콜/풋 거래의 구체적인 예
(중개인이 없는 시장에서)1000원짜리 주식 A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A에 대한 행사가 1100원에 만기 1달짜리 콜 옵션을 프리미엄 10원을 주고 샀다고 가정해보자. 1달 후 주식이 1020원이면, 가격이 행사가인 1100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콜은 행사가 불가능한 휴지가 된다. 즉, 매수자의 최대손실 폭은 최초에 지불한 프리미엄으로 제한된다. 그러면 처음 콜에 투입한 10원을 잃게 된다. 반면 운이 매우 좋아 가격이 2000원이 되면 콜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2000(현재가)-1100(행사가) = 900
주식은 2배가 되었지만, 콜로 인해 얻은 이득은 900-10(프리미엄) = 890원이 되어 최종 수익률은 89배(!)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 기초상품의 수익 대비 40배가 넘는 수익이 나는 것이다. 이를 옵션의 레버리지 효과라고 한다. 콜 매수자는 콜을 900원에 팔 수도 있고, 아니면 본인이 직접 행사해서 주식을 살 수도 있다. 모든것이 좋아보인다.
하지만 매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매수자로부터 프리미엄 10원을 받았을 뿐이지만, 900원을 그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매수자가 콜을 매도 또는 행사 하면 매도자는 콜의 가치만큼을 매수자에게 줘야할 의무(obligation)가 있다. 즉, 옵션 시장은 현물 시장과 달리 제로썸(zero sum)이다.
세상에 40배나 손실을 입었는데 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냐고? 어지간해서는 돈이 부족하지 않도록 중개사들이 증거금(margin)을 최초 매도가격의 정해진 배수만큼 계좌에 있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 장 마감 기준으로 계좌 총 평가 잔액(balance)가 부족하면 중개사가 매도자에게 추가 증거금을 요구한다. 이를 마진콜(margin call)이라고 한다. 여기 응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반대매매(covering)가 나가게 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40배나 손실을 보기 전에 계좌가 깡통이 되기 마련이다. 매도자에게 한 가지 위안이 될만한 사실은 대부분의 거래는 매도자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찬가지로 중개인이 없는 시장에서)풋 옵션에 대해 고려해보자. 2000원 짜리 주식 B가 있고 B에 대한 행사가 1000원에 만기 1달짜리 풋 옵션을 프리미엄 10원을 주고 샀다고 가정해보자. 1달 후 주식이 1050원까지 떨어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가 1000원 아래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풋은 행사가 불가능한 휴지가 된다. 그러나 만약 운이 좋아 900원까지 떨어지면 풋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1000(행사가)-900(현재가)=100
주식은 반토막 정도가 났지만, 풋으로 얻은 이득은 100-10(프리미엄)=90원이 되어 최종수익률은 9배다. 반대로 매도자는 10-100=-90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3. 일상적인 설명
매수/매도자의 이익 또는 손실 폭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일상적인 예는 보험거래다. (콜이든 풋이든)매수자는 고객의 입장이 되고, 매도자는 보험사의 입장이다. 고객(옵션 매수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험사에 일정량의 보험료(premium)를 지속적으로 납부하다가 보험 요건이 충족되면 1회 보험료의 수십~수천 배에 달하는 보험금을 받는다. 반대로 보험사(옵션 매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 1회 보험료의 수십~수천 배에 달하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위험이 있지만 가입고객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정해진 보험료를 받는다. 사실 그런 면에서 보면 옵션 매도는 어느정도 고정수익(fixed income) 상품이다.
옵션 거래도 동일하다. 콜/풋 옵션 매수자는 가격 상승/하락에 따라 거대한 이익이 생기지만 손실폭 옵션 프리미엄으로 제한된다. 반대로 콜/풋옵션 매도자는 가격 상승/하락에 관계없이 옵션 매수자로부터 프리미엄을 받지만 기초상품 시작이 발작을 일으키면 엄청난 양의 돈을 매수자에게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얼핏 보면 매수자가 유리한 거래같지만, 실제 확률적으로는 매도자가 훨씬 유리한 게임이다(보험도 보험사가 유리하긴 마찬가지). 어쨌든 프리미엄 결정의 주도권은 매도자에게 있고, 확률이 높은 사건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나이가 많아지면 보험료가 비싸지는 이유와 동일).
4. 내가(in the money), 외가(out of the money), 극외가(deep out of the money)
위의 세 가지 용어는 기초상품의 현재가격에 대해 파생상품의 행사가가 어느 쯤에 있는 지를 이르느 말이다. 가령, 현재가 1500원인 주식에 대해 행사가 1000원짜리 콜은 내가 콜이다. 하지만 2000원짜리 콜은 외가 콜이다. 5000원(!)짜리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행사가의 콜은 극외가 콜이라고 한다. 당연히 내가로 갈수록 가격이 비싸다.
반대로 2000원짜리 주식에 대해 행사가 2500원짜리 풋은 내가 풋이다. 1900원짜리 풋은 외가 풋이다. 1000원(!)짜리처럼 있을 법 하지 않은 낮은 행사가를 가진 풋을 극외가 풋이라고 한다.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옵션시장의 말도 안되는 수익률, 이를테면 하루 아침에 500배 등.. 이 발생하는 상품이 극외가 옵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극외가 옵션이라고 하면 옵션 시세 기준으로 0.1 이하, 즉 한 계약 당 25000원 이하의 옵션을 의미한다. 가장 낮은 가격은 0.01로, 한 거래당 가격이 2500원이다(더 내릴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옵션의 기초상품은 kospi200 지수다.옵션의 만기는 매달 두 번째 목요일이다. 그리고 만기일이 가까워지면 가격 변동의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3일 남은 것보다는 20일 남은게 기회가 더 많으니) 많은 매수자들이 옵션들을 팔고 그에 따라 극외가 옵션이 잔뜩 늘어나게 된다. 당연히 매도자들은 극외가 옵션을 사줄 매수자가 있기를 바란다. 프리미엄을 받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마켓 플레이어들이 비슷하게 행동하는 시점이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만기일 가까운 시점에 발생하는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일 것이다. 놀라운 사건이 터졌을 때 외가가 내가로 들어오고,가격이 가장 심하게 요동치므로.
5. 911테러와 극외가 풋
21세기가 된 후 아직까지 심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일으킨 사건은 911 테러였다. 손해의 합으로 치면 COVID-19가 더 클 것 같기는 하지만..
파생상품 거래자들에게 3, 6, 9, 12월은 특별한 달이다. 두 번째 목요일에 옵션의 만기와 함께 선물도 만기가 돌아오는 달이기 때문이다(선물은 3개월마다 만기가 돌아온다). 9월 11일은 두 번째 화요일이었다. 미국 시각으로 오전 8시 46분에 발생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9월 11일 밤 10시였다. 그러니 테러 후 코스피의 최초 개장 시점은 9월 12일 수요일이었고, 그 다음날은 선물/옵션 동시만기일이었다.
수요일 새벽에 뉴스가 돌고, 아침 9시가 되어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코스피는 12% 넘게 폭락했다. 당시 코스피 하한가 폭이 15%였음을 고려하면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코스닥도 대기록을 썼다. 11.5% 가량 떨어졌는데, 당시 코스닥의 하한가 폭은 12%였다. 사실상 전종목이 하한가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기록은 파생상품 시장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9월 12일 코스피 200 지수는 66.55에서 시작해서 58.59로 마감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코스피 200 지수 9월물 행사가 62.5포인트(내가로 진입하려면 66.55에서 62.5포인트까지 떨어져야 하는데, 이것만 해도 하루 6퍼센트 이상 하락해야한다)였던 풋이 극외가(0.01*100000원)에서 내가(5.05*100000원)으로 진입하면서 500배(!) 상승 기록이 나와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 다음날에는 다시 지수가 올라서 가격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처럼 911이 발생했던 시기가 시기였기 때문에 이 사건에는 증권가 음모론이 항상 붙어다닌다. 사실 911 말고도 500배짜리 수익률이 터진 적은 몇 번 더 있으니(2004년 차이나 쇼크 때는 600배..) 전혀 믿을만한 얘기는 못 되지만, 여전히 그런 말들은 나돈다. 언제나 불투명할 수 밖에 없는 증시이기 때문에 퍼져있는 주식시장의 미신(?) 중 하나다.
https://2ndflight.tistory.com/94
'투자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보(Libor)에 대해 알아보자 (0) | 2020.12.28 |
---|---|
헤지 펀드(Hedge Fund)에 대하여 (0) | 2020.12.26 |
유상증자를 일으키는 세 가지 방법 (0) | 2020.09.07 |
유상증자(Capital increase with consideration)란 무엇일까? (1) | 2020.09.02 |
IRP(개인 퇴직 연금), 연금저축 상품의 함정 (0) | 2020.08.26 |
댓글